※ 원본은 곧 폐쇄될 예정인 제 네이버 블로그에 2018년 8월 28일 업로드한 글입니다.
※ 당연히 현 시점(2020년 2월 19일)의 저와 과거의 저는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에 쓴 글을 보존하는 의미로 원문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했습니다. 아래 글을 읽을 때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처음 이 주제로 글을 쓰기로 예고 드렸던 게 8월 5일이니까 거의 한 달 전이네요. 어쩌다 보니 많이 늦어졌는데, 그 사이 영양가 없는 서론의 조회수가 꽤 늘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이 주제로 글 쓰는 건 PRS 때처럼 길게 시간 끌지 않고 최대한 빨리 해치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가지고 있는 페달 이펙터를 활용해서 일렉트릭 기타 홈 레코딩에 입문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스튜디오 레코딩을 한다거나, 그게 아니어도 충분히 어마 무시한 장비들을 이미 소유하고 있으며 활용까지 하고 있다거나 하는 입장에서 보기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음...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죠. 나름 심혈을 기울여 바꿈질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정착(?)한 본인 취향이 200% 반영된 페달 이펙터들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일렉트릭 기타로 레코딩을 하려고 합니다. 일단 필요하다니까 DAW는 설치했는데, 왠지 가상악기들 가지고 레코딩을 하자니 찝찝합니다. 마우스로 노브 조정하는 것도 아무래도 익숙하지가 않고... British High Gain, American High Gain... 이런 저작권 시비에 걸리지 않는 몰개성한 이름들을 보고 있자니, 차라리 내가 갖고 있는 페달 이펙터를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왕왕 듭니다. 그래서 커뮤니티에 질문 글도 올리고, 레코딩 좀 할 줄 아는 지인한테 질문을 합니다. "페달보드 가지고 레코딩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돼?"
아마 그러면 십중팔구 이런 답변이 돌아올 겁니다.
"... 그냥 멀티 이펙터를 쓰던가, 아니면 레코딩 할 때는 신호만 받고, 톤 메이킹은 소프트웨어로 만지는 게 어쭙잖은 이펙터 쓰는 것보다 훨씬 퀄리티 높아."
나보다는 고수가 해 준 답변이니까 일단은 끄덕끄덕하고서, 다시 기타를 안고 컴퓨터 앞에 앉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찜찜한 당신을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랬고, 현 장비들에 정착하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으며, 여전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헤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21세기의 어디 모난 데 없이 잘 다듬어진 스튜디오 기타 소리가 아니라, 어딘가의 지하 합주실에 불쑥 찾아들어가 연습 중인 밴드 합주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의 사운드를 여전히 좋아하는 저 같은 분이시라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단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사용 장비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타는 PRS Wood Library Custom 24-08의 리어 픽업인 85/15MT를 험버커 모드로 사용했습니다. 볼륨 노브와 톤 노브는 모두 10입니다.
페달보드에 올라와 있는 이펙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Mosky Power Station DC Core 10, Visual Sound Route 808(Overdrive, 현재 단종), Catalinbread Katzenkönig(Distortion/Fuzz), Boss Super Chorus CH-1, TC Electronic Flashback Delay and Looper(현재 업그레이드되면서 단종), TC Electronic Hall of Fame Reverb(현재 업그레이드되면서 단종).
이 글의 예상 독자는 ① 멀티 이펙터가 아닌 페달형 이펙터들을 하나 둘 모아서 만든 페달보드를 가지고 있으며, ② 밖에 나가면 앰프를 이용해 합주도 하고 공연도 하지만, 집에서 앰프를 이용한 하드 레코딩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서, ③ 컴퓨터로 녹음을 하고자 하는 홈 레코딩 입문자라고 가정했습니다. 페달보드가 많이 단출한 느낌입니다만, 가장 기본적인 이펙터들을 가지고 예시를 들어주는 정도로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컴프레서나 EQ 정도가 추가된다면 레코딩 할 때 직관적으로 다룰 수 있는 변수가 조금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믹싱할 때 다른 트랙들과의 조화를 고려하면서 DAW 내장 이펙터로 조정하는 편입니다. 트레몰로, 플렌저, 와우 같은 다른 이펙터들도 취향 따라 더 얹어질 수는 있겠지만, 아마 이펙터를 필요한 순서대로 하나 둘 모은다면 가장 기본적으로는 오버드라이브 → 디스토션 → 코러스(모듈레이션) → 딜레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보통 페달보드를 들고 다니며 앰프를 사용하는 상황이라면 리버브는 앰프에 내장된 것을 쓰는 경우가 많겠지만, 앰프를 활용하기 어려운 상황을 가정했고, 제가 빈티지한 에코 느낌의 리버브를 좋아해서 추가했습니다.
자, 이제 기타와 페달보드가 준비되었습니다. 이걸로 녹음을 하려면 어떻게 할까요? 음, 컴퓨터에는 3.5㎜ 단자가 있고, 기타는 5.5㎜ 단자가 들어가니까...
... 요런 5.5 to 3.5 변환 젠더를 쓰면 되는 걸까요?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왜냐하면 기타에서 나오는 신호는 하이 임피던스인데, 컴퓨터의 헤드폰 인풋은 로우 임피던스이기 때문입니다. 기타에 헤드폰을 직접 연결해서는 안 되고 헤드폰 앰프 같은 걸 필요로 하는 이유도 같은 원리입니다. 임피던스란 교류 전원에서의 저항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직류에서의 저항에 더해, 교류의 주파수에 따라 콘덴서나 코일도 이런저런 작용을 하게 되는 물리량입니다. 제가 이과 출신이기는 합니다만, 물리 시간에 교류 전원에 대해 배운 건 벼락치기로 시험 문제는 어떻게든 풀 수 있었지만 이해는 하나도 못 한 수준이기 때문에, 더 자세한 설명을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어쨌거나 기타에서 나온 하이 임피던스 신호를 헤드폰 인풋, 혹은 마이크 인풋에 연결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물론 용기가 없어서 직접 실험해보진 않았음) 110V 전자기기를 220V 전원에 연결했을 때 일어나는 비극 같은 게 벌어질 겁니다.
자, 그러면 기타를 컴퓨터에 어떻게 연결해야 하느냐? 몇 가지 방법이 있겠습니다만, 가장 무난한 방법은 하이 임피던스 신호를 로우 임피던스 신호로 변환해주는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이용하는 겁니다.
제가 2014년에 구입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오디오 인터페이스 Audioprobe 사의 Spartan Cue입니다. 현재는 단종되었고 개선된 버전인 Spartan Cue 110이 시판되고 있습니다. 당시 '20만 원 대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다 거기서 거기니까 디자인 보고 골라라'라는 조언에 따라 구입했습니다. 동가격대에서 다양한 기능을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 나름대로의 차별 포인트였는데, 마이크 몇 번 연결해 본 걸 제외하고는 하이 임피던스 인풋 이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해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단지 하이 임피던스 신호를 로우 임피던스 신호로 바꾸는 장치가 아닙니다. 정확하게는 아날로그 신호 ↔ 디지털 신호의 상호 변환이 가능한 장치입니다. 즉,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아날로그 신호인 소리를 이진수 디지털 신호로 전환해 컴퓨터에 전달하고(AD Converter), 컴퓨터에서 나온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인 소리로 변환해서 사람에게 들려주는(DA Converter) 장치입니다. 음악이든 방송이든 다른 무엇이든,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마이크를 이용한 음성 녹음, 기타 및 베이스 소리 녹음, 미디 신호 변환, 언밸런스드 신호를 밸런스드 신호로 변환 등등...
어쨌거나 저는 기타 소리를 녹음할 때, 하이 임피던스 인풋(Inst, Gain 2로 표기되어 있습니다)으로 기타가 들어가고, USB를 통해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컴퓨터를 연결합니다.
그러면 녹음을 해 볼까요. 우선 미디로 드럼하고 베이스를 찍었습니다. 거기다 EQ, 컴프레서, 리버브 정도 걸어서 그럴듯한 반주를 만들었습니다. 거기에다 기타를 얹어 보겠습니다. 이펙터 세팅은 나름대로의 베스트 톤으로 잡고 볼륨 밸런스를 조절했으며, 오디오 인터페이스의 게인 노브는 계속 0에 두었습니다.
우선 톤 노브 10, 볼륨 노브 10의 기타가 OFF된 이펙터들을 거친 후 바로 오디오 인터페이스에 연결되었을 때 소리입니다. 위 영상의 0:00~0:25에 해당합니다. 교류 신호는 전압이 낮을 때 임피던스에 의한 신호의 급격한 열화가 나타나기 때문에 OFF시켰을 때 신호를 그냥 통과시키는 트루 바이패스 이펙터만 지나가게 되면 소리가 듣기 싫어집니다. 따라서 버퍼를 일부러 페달보드에 포함시키는데, 저는 버퍼 바이패스 이펙터인 Route 808과 CH-1을 사용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음, 많이 건조하긴 하지만 일단 들어줄 만 한 것 같습니다. 왠지 기타 프로로 노트 찍었을 때랑 별 차이 없는 느낌이긴 하지만, 적어도 기타 소리처럼 들리기는 합니다.
톤이 너무 드라이할 땐? 공간계 이펙터를 걸어주면 됩니다. 위 영상의 0:25~0:50에 해당하는 소리입니다. 저는 은근하게 코러스 걸린 소리를 좋아해서 거의 항상 보스 코러스를 켜 놓습니다. 거기에 Tape Echo와 Church Reverb를 걸었습니다. 둘 다 깔끔한 느낌은 아닙니다만, 뭔가 점점 너저분해지고 알록달록 해져가는 것 같은 진득진득하고 축축한 느낌이 좋아서 제가 자주 사용하는 세팅입니다. 물론 보스 코러스 CH-1이 코러스 본연의 역할에'만' 충실하다면, TC Electronic 사의 플래시백 딜레이와 홀 오브 페임 리버브는 톤 가변성이 어마어마하게 넓으니 연구해보면 재미있을 겁니다.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의 에코 먹인 사이키델릭 기타 소리와 최근 유행하는 포스트 록의 몽환적인 리버브 기타 소리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을 따와 미묘하게 합쳐놓은 것 같은 소리인데, 제 개인적인 개성이 잘 드러나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좀 들어줄 만 하군요. 그런데 이게 일렉트릭 기타 하면 생각나는 소리인가요?
역시 일렉트릭 기타에는 게인을 이빠이(일본어 죄송!) 걸어줘야죠. 위 영상의 0:50~1:15에 해당하는 소리입니다. 일단 TS 808 계열 이펙터인 Visual Sound(현재는 True Tone으로 이름이 바뀜)사의 Route 808(단종)을 살짝 걸어봅니다. 음, 게인을 별로 걸지도 않았는데 톤이 뭉개지면서 답답한 느낌이 납니다. 그래도 아직은 들어줄 만 하다는 느낌입니다.
좀 무리해서 디스토션을 걸어봅시다. 위 영상의 1:15~1:40에 해당합니다. 랫 잡는 고양이 왕을 표방하고 있는 Catalinbread Katzenkönig입니다. 음, 아르페지오 소리부터 뭔가 찌그러진 느낌이고 신호보다 잡음 더 잘 들리는 수준으로 엄청나게 증폭되는 주제에 스트로크 긁기 시작하니 베이스에 다 묻혀버리는 무지 답답한 소리가 되어 버리는군요. 분명 들어가는 신호의 dB를 보면 작은 소리는 아닌데 마스킹이 일어납니다. 뭐, 작정하고 이걸 음악적으로 끼워 넣으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본다면 못 할 것도 없겠지만, 확실히 음반에서 들을 법한 소리는 아닙니다. 차라리 기타 프로의 Distorted Guitar 프리셋을 불러와서 노트 찍은 것 같은 미디 신호 느낌 팍팍 나는 소리가 더 음악적일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기타와 페달보드를 거친 소리를 바로 오디오 인터페이스에 연결하는 건, 공간계를 건 클린 톤, 좀 무리해서 오버드라이브를 살짝 건 톤 까지는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딱히 음악적으로 좋은 소리는 아니라는 느낌입니다.
저가형 오디오 인터페이스에 내장된 프리앰프가 수백만 원 하는 스튜디오 오디오 인터페이스에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도 있겠지만, 단순히 그런 문제는 아닐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자주 듣는 앰프를 통한 기타 소리는, 기타에서 나온 신호가 그대로 출력되는 것이 아닌 앰프의 회로를 거치며 왜곡된 소리인데, 그걸 '진짜 기타 소리'라고 생각하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우선 앰프에는 EQ가 있으나 Spartan Cue를 포함한 대부분의 저가형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Gain 노브 하나 있고 EQ가 없습니다. 앰프 특유의 EQ는 기타와 거의 비슷한 중요도로 개성적인 톤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치는데 그게 오디오 인터페이스에는 결여되어 있는 겁니다. 감상용 헤드폰과 모니터링용 헤드폰의 차이 같은 거랄까요?
또한 기타 앰프에서는 입력 신호가 출력 한계를 넘었을 때 신호가 왜곡되는, 그러니까 '디스토션' 때문에 배음이 발생하는데,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이런 현상이 발생하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입력된 신호를 변환해서 출력해준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다 보니 고음역대가 많이 답답하게 들리고, 마스킹이 발생하며, 뭉개진 것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어찌 보면 왜곡되지 않은 '페달 이펙터까지 합쳐졌을 때 진짜 기타 소리'는 이쪽 일 수도 있겠지만... 뭐, 어떻게 합니까? 이미 앰프가 '원조 기타 소리' 자리를 차지해버렸는데요.
저는 이 기타 → 페달보드 → 오디오 인터페이스 → 컴퓨터 방식을 무려 3년 동안이나 곡 작업할 때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용하는 소리도 클린 톤, 잘 해봐야 로우 게인 톤 정도로 한정되었었습니다. 이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3년 중 앞의 1년 반은, 왠지 마이크 올드필드에 빠져 있어서 '이 소리도 나름 음악적이지 않나?'라고 생각했고, 별다른 시도 없이 이펙터들만 가끔 바꿔가면서 보냈고, 뒤의 1년 반은 군대에 있었습니다. 군 생활하면서 혼자 '포큐파인 트리의 《Deadwing》과 Wowaka의 《World 0123456789》를 잘 혼합해 놓은 것 같은 음악을 하고 싶다!' 정도의 생각이 들어서, 비로소 변화를 주기 시작했었습니다.
자, 앰프에 의한 신호 왜곡이 없는 게 문제라면, 페달보드와 오디오 인터페이스의 중간에 앰프 비슷한 걸 넣어 주면 되겠죠? 저는 이 정도의 상식적인 생각으로 일단 페달형 프리앰프를 끼워 넣었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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